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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대로

드디어 The Huntington Library 방문 !!

by 우리상희 2021. 10. 31.

 

 

 

드디어 The Huntington Library 방문!!

헌팅톤으로 알려진 헌팅톤 도서관, 미술관 및 식물원은 Henry E. Huntington과 Arabella Huntington이 설립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마리노에 위치한 컬렉션 기반 교육 및 연구 기관입니다. 

 

 

패사디나에 있는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여러 가지 남가주 명소의 하나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헌팅턴 도서관, 미술관, 식물원’(The Huntington Library, Art Museum, and Botanical Gardens)인데 보통 줄여서 ‘헌팅턴 라이브러리’ 혹은 그냥 ‘헌팅턴’이라고 부릅니다. 간혹 사람들이 헌팅턴 비치와 핵 갈리 때도 있는데..헌팅턴 비치는 캘리포니아주의 도시로 인구가 189,992명 정도 있는 곳입니다. 바닷가 옆에 도시입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 모습입니다.
The Huntington Library

 

 

 

이름이 이렇게 길게 붙여진 이유는 희귀한 고문서 1,100만 점이 소장된 도서관, 유럽과 미국 미술품 수만 점을 전시한 미술관, 10여 개의 120 에이커의 식물원이 방대한 207 에이커 부지에 펼쳐져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정원을 구경하러 찾아가지만 학술연구를 위해 도서관과 미술관을 찾는 학자들이 연간 1,700여 명에 이르고, USC와 칼텍과 연계한 역사 및 과학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관계로 내부 도서관, 미술관은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에 있는 식물원만 구경하고 왔습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 다른모습입니다.
The Huntington Library

 

 

 

헌팅턴 도서관은 올해로 창설 101년을 맞았습니다. 이것은 크게 기념할만한 일로, 남가주에서는 게티 뮤지엄(1954)과(1954)와 LA카운티미술관(1965) LA카운티 미술관(1965)보다 한참 앞서고, 뉴욕의 휘트니 뮤지엄(1930)과 구겐하임 뮤지엄(1937)보다도 먼저 지어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개인 컬렉션으로 설립된 문화예술교육기관으로는 아마도 미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는 1919년 철도와 부동산 재벌이었던 헨리 E. 헌팅턴과 아라벨라 헌팅턴 부부가 설립한 곳입니다. 직접 와서 구경을 하면 진짜 어마어마한 규모로 인해 하루 동안 구경이 불가할 정도로 큽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기에 이 많은 도서와 미술품 예술품을 사고 여기에 땅을 사서 이곳을 설립했는지.... 진심으로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전 세계를 다니며 희귀 도서 들을 수집한 헨리 헌팅턴은 두 번째 아내 아라벨라의 영향으로 예술품 수집에도 열정을 기울여 방대한 소장품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 외부입니다.
The Huntington Library

 

 

 

이 역사에서 무척이나 흥미를 끄는 사람이 아라벨라 헌팅턴(1850-1924)이란 여인입니다. 그녀는 헨리 헌팅턴의 삼촌인 콜리스 헌팅턴의 아내였으나 남편이 죽고 난 후 조카와 재혼하여 숱한 화제를 뿌린 인물입니다. 어떻게.. 출생과 배경이 미스터리인 아라벨라는 1919세 때 고향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를 떠나 뉴욕으로 이주, 존 워샴이라는 중년 남자와 결혼해 그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은 것으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워샴과의 결혼은 위장일 뿐, 사실은 유부남이던 철도재벌 콜리스 헌팅턴의 정부였고, 아들(아처 밀튼 헌팅턴)도 헌팅턴의 친자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하지만..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고 합니다. 콜리스는 그의 아내가 죽자마자 1884년 아라벨라와 결혼했고 아들도 입양 다고 합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 다른 곳에서 본 외부 모습입니다.
The Huntington Library

 

 

 

아라벨라는 결혼하면서 자기가 살던 집을 존 D. 록펠러에게 팔았는데 지금 모마(MOMA) 미술관의 정원이 된 곳이다. 모마 미술관의 정원은 지금의 뉴욕 현대 미술관입니다.  D. 록펠러 또한 미국의 사업가 이자 대대 부호입니다.. 많은 가설 중 하나가 이 사람처럼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아직 없다고 하는 설이 제일 많이 있습니다. 믿거나말거나 입니다.  1870년 스탠더드 오일을 창립하고 석유 사업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역대 세계 최고의 부자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또 콜리스와 아라벨라 두 사람이 건축하고 살았던 뉴욕 핍스 애비뉴 57번가의 저택은 1906년 티파니 컴퍼니가 구입해 아직도 그곳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온 바로 그 저택이라고 하네요 그러면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두 사람은 진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누리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 밖의 모습입니다.
The Huntington Library

 

 

아라벨라는 1900년 콜리스가 죽자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업을 벌였으며, 죽을 때까지 검은 옷을 입고 다닌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남편 사후에도 헌팅턴 가문과의 관계가 이어지면서 남편의 조카였던 헨리 헌팅턴과 자주 접촉하게 되었고, 급기야 스캔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두 사람은 계속 부인했으나 결국 헨리가 이혼하고 숙모와 함께 파리로 날아가 1913년 결혼하면서 세기의 불륜은 세기의 로맨스가 되었습니다….. 띠로링…..

 


아라벨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구축하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은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 최대 재벌이었던 두 명의 헌팅턴을 남편으로 두었던 덕분에 파리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카르티에, 티파니, 부셰론 같은 보석상들에게서 유럽 왕실의 보석 컬렉션을 사들였고, 18세기 프랑스 장식미술품과 회화 수집에 열을 올려 미국과 유럽 화단의 큰손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쇼핑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미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세관에 낸 세금이 매번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다는데, 1910년 입국 때의 기록에는 
세금으로만 그 당시 가치로 4만 8,000달러를. 지금은 몇 배가 더 넘겠죠? 

 

 

헌팅턴 라이브러리 다른 밖의 모습입니다.
The Huntington Library

 

 

 

그녀는 1924년 죽을 때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귀속된 것을 제외한 모든 재산과 미술품, 가구, 장식품 일체를 아들에게 상속했고, 아들은 어머니의 컬렉션과 귀중품의 상당 부분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샌프란시스코 뮤지엄, 예일대학 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많은 부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 박물관 또는 대학교 등에 기부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름으로 만든 학교 미술관 또는 박물관들이 미국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보석 컬렉션은 통째로 해리 윈스턴이라는 무명의 보석상이 사들였으며, 그는 아라벨라의 보석을 해체하여 모던 스타일로 만들어 팔면서 세계적인 보석상으로 발돋움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부를 가진 한 여인의 허영과 수집벽이 방대한 도서관과 뮤지엄의 토대가 되었고 미술사를 보면 세계의 많은 뮤지엄들이 의도했건 안 했건 한 개인의 물욕과 소유욕에 의해 태동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라벨라는 생전에 남편과 함께 재단을 세우고 소장품을 기증했으니 어찌 됐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생애 마무리는 잘한 거 같습니다. 기증으로 끝났으니깐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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